가난 때문에 무용 포기하고 레이싱걸로 월 400 벌었다더니, 지금은?

진정성과 리얼리티가 대세라고 하지만 방송으로 보이는 스타들의 모습은 일부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자신의 방송 콘셉트에 맞게 특정한 부분을 과장해서 드러내지요. 또 방송의 재미나 화제성을 위해 다소 자극적으로 포장된 이미지가 평생 따라다니면서 고생하는 스타들도 있는데요.

데뷔 전 이력이 꼬리표로 따라다니는 바람에 배우로서 자리 잡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는 스타를 만나봅시다.

데뷔 전 이력 때문에 '섹시한 이미지'가 고정되어 고생했다는 주인공은 배우 오윤아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대무용을 배우며 무용가를 꿈꿨다는 오윤아는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한 초등학교 졸업사진 속에서 이미 완성된 미모가 눈에 띕니다. 중학생 때는 워낙 키가 큰 데다 무용을 하면서 길게 기른 머리 때문에 성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야타족을 비롯한 성인 남성들이 추파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오윤아는 중학생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무용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무용 학원 레슨비가 밀렸고 선생님에게도 폐를 끼치는 게 미안했던 오윤아는 학원을 그만두고 무용을 더 이상 할 수 없었지요. 워낙 어린 시절부터 간절하게 원하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 순간 오윤아는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자포자기한 채 지냈습니다.

다만 가난 속에서 힘들게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돈 벌어서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오윤아는 실제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시가 아닌 사회생활을 선택했고 우연히 레이싱모델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윤아가 처음 레이싱모델을 시작한 1999년 당시 월수입이 40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20살의 사회 초년생에게는 매우 큰돈이었지요.

특히 2000년 제1회 '사이버 레이싱퀸 선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윤아는 연예인보다 유명한 셀럽이 되었습니다. 당시 오윤아의 온라인 팬카페 회원은 5만여 명이었고 오윤아는 최초로 연봉 계약을 성사한 레이싱걸이 되기도 했지요.

치솟는 인기와 함께 방송가의 러브콜을 받게 되면서 오윤아는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2002년 말 음반을 내는 조건으로 한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하면서 연예계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가수 활동은 미루게 되었는데요. 이후 2003년 이민우의 '저스트원나이트'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첫 방송 데뷔를 했습니다.

이후 2004년 드라마 '폭풍속으로'에서 2회에 거쳐 짧게 출연하면서 첫 연기에 도전한 오윤아는 드라마 '알게될거야'에 출연하면서 본격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연이어 시트콤 '올드미스다이어리'에서는 73년생의 배우 예지원과 동갑내기 친구 역할을 맡아 열연했지요. 연기 경험이 전무한데다 연기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윤아의 연기는 꽤 안정적이었고 '레이싱걸 출신의 떠오르는 신인배우'라는 타이틀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싱걸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 좋은 수식어이면서 한편 배우로서 자리 잡는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기도 했습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오윤아에게 레이싱모델로 활동하던 당시와 같은 섹시 이미지를 원했고 오윤아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스커트나 목 라인이 깊게 파인 옷 등 조금이라도 노출이 있는 의상을 무조건 피할 정도로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그때 오윤아는 자신을 향한 선입견을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남자들이 자신을 쉽게 보고 연락하고, 술 한 잔 마시고 덮치려는 경우까지 겪으면서 섹시 이미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을 지경에 이른 오윤아는 결혼을 빨리하면 탈출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실제로 2007년 1월 27살의 여배우 오윤아는 5살 연상의 마케팅 회사 임원 송 모 씨와 결혼에 골인했고 같은 해 8월 아들까지 낳으면서 유부녀 배우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꽃길을 위해 선택한 결혼과 출산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출산 직후 산후우울증을 겪게 된 오윤아는 스스로 씨받이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출산 7개월 만에 16kg이나 감량하면서 드라마에 복귀한 2008년 오윤아는 어린 아들을 두고 촬영을 가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것인지 건강 이상까지 생겼습니다. 사극 촬영 중 목이 붓는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촬영 일정 때문에 수술을 미루는 바람에 종양이 커지고 전이가 되어 수술 후 회복에도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렸지요.

그리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섹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던 오윤아는 한 선배의 조언을 듣고 연기에 다시 집중하게 되었는데요. 선배는 "네가 가진 그 이미지를 사람들이 질려 할 때까지 보여줘라. 그리고 섹시한 이미지를 탈피해라"라며 오윤아에게 정면돌파의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선배의 말에 힘을 얻은 오윤아는 배우로서 자신의 역량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섹시 이미지라고 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자신 있는 역할,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라면 마다하지 않았지요. 출산 후 이듬해 바로 복귀한 오윤아는 매년 2~3작품을 이어가며 다작 배우가 되었고 연기 경험이 쌓이는 만큼 노련하고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하나 오윤아가 배우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들 민이 덕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민이는 5살 때 9.5kg이 나갈 정도로 발달과 영양상태가 늦었고 그만큼 엄마의 보살핌이 절실했는데요. 오윤아 역시 갑상선암 투병으로 몸이 약해진 상황에서 예민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오윤아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고 아이를 위해 연기 활동 역시 놓치지 않는 완벽한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특히 2015년 결혼 8년 만에 남편과 이혼하면서 싱글맘이 된 이후 오윤아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혼 후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두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온 오윤아는 2017년 드라마 '언니가살아있다'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복수하는 아내 역을 맡아 극중 발달이 느린 아들에게 지극한 모성애를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는데요. 당시 오윤아는 한 인터뷰를 통해 "실제로 아들 민이가 올해 열한 살인데 발달이 느리다. 센터에 가서 치료를 많이 받아서 그런 친구들에 대한 이해도가 컸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보다 진솔하게 털어놓게 된 오윤아는 아들이 6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을 두고 일하러 가기 바쁜 자신에 대해 늘 '죄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최근 오윤아는 새로운 예능 프로에 합류해 아들과의 일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는데요. 해당 방송에서 오윤아는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걸 힘들어한다고 전하면서 "어렸을 때는 뭐라고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그분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가 그만큼 많이 안 나와서 이분들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우리 민이 보면서 아픈 친구 키우는 엄마들이 많이 나와서 다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레이싱걸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거듭난 것처럼 아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 역시 오윤아답게 정면돌파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배우 오윤아, 엄마 오윤아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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