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모른다던 여중생은 지금 일본에서 난리 났습니다

일본의 대중문화계는 최근 "음악은 BTS에게, 영화는 기생충에게 밀려 한국에 추월당했다"라며 부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재팬의 음악에 열광하고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흥행대박을 치던 90년대와 달리 요즘은 K팝과 K문화산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또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한국 배우가 일본 영화계를 주름잡고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다는 놀라운 보도입니다. 한국에서 쌓은 배우로서의 입지와 명성을 잠시 내려놓고 일본 영화계의 신인으로 돌아갔다는 이 배우는 놀랍게도 단 2년 만에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94년생 아직 20대의 나이지만 연기경력이 무려 18년 차인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심은경입니다. 심은경은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을 걱정하던 부모님이 성격을 고쳐보려고 보낸 연기학원에서 연기에 흥미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아역배우로 성장했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3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단역을 맡은 것이 데뷔였습니다.

이후 영화 '도마안중근'과 '드라마 '결혼하고싶은여자', '장길산'등에 출연하며 연기에 재미를 붙이던 심은경은 드라마 '단팥빵'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주인공의 회상 장면에 짧은 분량 출연했지만 당찬 이미지와 똑 부러지는 연기력은 눈에 띄었지요.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의 아역배우 심은경은 극중 자신의 배역에 대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조금 여성스러웠으면 좋겠다"라고 인터뷰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후 주연급 아역배우로 자리 잡은 심은경은 故 정다빈, 하지원, 이소연, 이지아 등의 아역을 맡았습니다. 아역배우의 연기에 따라 드라마 초반 시청률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심은경의 똑 부러지는 연기는 감독들에게 믿음을 주었지요.

그리고 2008년 심은경은 서태지와 함께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광고 속에서 심은경은 서태지의 음악을 듣다가 실제 서태지가 등장하자 "아저씨 누구세요?"라며 굴욕을 안겼고 해당 광고가 이슈 되면서 심은경은 한동안 '서태지 굴욕소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데요. 서태지가 데뷔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심은경은 그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입니다. 심은경은 서태지의 공연을 직관한 후 "관객을 압도하는 노래와 무대매너를 보면서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연기로 감동을 주는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광고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심은경은 2009년 영화 '불신지옥'을 통해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게 됩니다. 해당 작품을 통해 심은경은 이전까지 귀여운 아역배우 이미지를 벗어나 소름 돋는 연기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는데요. 심은경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외톨이 소진 역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떨어져 혼자 지낼 정도로 집중했고 그 결과 관객을 압도하는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영화 '불신지옥' 이후 더 이상 누군가의 아역이 아니라 작품 속 중심 배역을 당당히 차지하게 된 심은경은 영화 '반가운 살인자', '퀴즈왕'과 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태희혜교지현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역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성인 배우로 변신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주연급 성인 배우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심은경의 선택은 조금 의외였는데요. 심은경은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2010년 9월 미국 피츠버그 소재의 고등학교를 거쳐 뉴욕의 '프로페셔널칠드런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다소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심은경은 "새로운 경험과 교양을 쌓고 싶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소양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또 심은경은 미국 유학 중 강형철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 '써니'에 출연하게 되면서 연기 활동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촬영 당시 강 감독은 "이제 연기는 나하고만 이야기하자"라고 제안해 이전까지 심은경에게 스승이자 매니저였던 엄마와 떨어져 온전히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지요.

전라도 사투리는 물론 걸쭉한 욕설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심은경은 더 이상 '아역 출신'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영화 '광해'까지 유학 생활과 연기 활동을 균형 있게 병행한 심은경은 2013년 졸업하고 귀국하자마자 또 다른 작품의 촬영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배우 심은경의 대표작 '수상한 그녀'가 세상에 나왔지요. 원톱 주연으로 작품을 이끌어간 심은경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겉모습은 20대이지만 속은 70대인 주인공을 적당히 유로 머스 하게 표현했고 직접 노래까지 불러 매력을 발산했지요.

덕분에 해당 작품은 866만 관객을 돌파했고 심은경은 그해 부일영화상과 춘사영화상 그리고 백상예술대상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톱배우의 반열에 오른 심은경은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열일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주연급 배우가 된 만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작품선정에 몸을 사릴 법도 하지만 영화 '부산행'의 카메오 출연을 위해 액션스쿨을 다닐 정도로 열정을 지켜나갔지요.

이후 영화 '조작된 도시', '특별도시', '염력', '궁합'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만들어가던 심은경은 충무로의 캐스팅 1순위가 된 그 순간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경험과 교양을 쌓기 위해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던 일본 영화계에 진출한 것인데요.

한국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2017년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후 일본어로 연기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일본의 연극 무대에 서며 연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영화계에 데뷔한 심은경은 데뷔작으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는데요. 연이어 출연한 영화 '블루 아워'로 제34회 다카사키 영화제의 최우수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일본 영화계의 떠오르는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영화 '블루아워'는 지난 22일 국내에서도 개봉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어른이 겪는 성장통'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해 심은경은 "아역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가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뭘 하고 있는지 몰랐고 강박도 느꼈다"라며 "지금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나름대로 그걸 소화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라고 털어놓았지요.

인생의 6할 이상을 배우로 살아온 심은경은 초등생부터 70대 노인까지를 연기했고 한국을 넘어 일본 무대에서도 성공했는데요. 스펙터클하다 싶을 정도로 도전에 도전을 이어온 심은경 배우가 20대의 남은 시간 동안은 보다 가볍고 자연스러운 청춘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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