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병간호하면서 두 동생까지 보살피던 소녀 가장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길

초등학생 때부터 오디션에 도전한 끝에 중1 때부터 대형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중3의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아이돌이라면, 일찍부터 연예인이라는 꿈에 확신이 있지 않았을까? 해당 질문에 당당히 NO라고 답한 스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진짜 꿈은 '교사'였다고 밝힌 주인공은 가수 선미입니다. 경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높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전교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던 선미가 돌연 연예인이 되겠다며 오디션에 참가한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는데요. 지병으로 거동이 힘든 아버지와 두 동생까지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초등학생 선미에게 '연예인'은 먹고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과거 선미가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직접 고백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선미는 남동생 둘과 편찮으신 아버지와 넷이 살았는데, 아버지의 상태가 점차 악화되면서 병원비로 생계가 어려워졌습니다. 식구들 중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소녀 가장이 된 선미는 1등 상품인 디지털카메라를 타기 위해 참가한 웹캠 얼짱 대회에서 실제로 우승하면서 모델 활동으로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지요.

당시에 대해서는 선미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이 증언을 더하기도 했는데요. 해당 네티즌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통해 "선미가 4학년일 때 만나 졸업할 때까지 가장 힘든 시기를 곁에서 지켜봤다. 집에서 여러 번 찾아가 선미 아버지와도 자주 만났다"라며 "선미는 참 의젓했다. 공부도 잘했고 예의도 바른 A+학생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선미 아버지는 척추결핵 때문에 전혀 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머니는 생활고를 못 이겨 집에 계시지 않았다"면서 "귀티 나는 아이여서 아버지가 내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선미를 딸로 받아달라'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선미 집에 찾아가려 했더니 선미 집을 아는 반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선미는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복지제도 도움을 받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됐다"라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전교회장을 맡으며 밝은 모습을 보이면서 집에서는 어린 가장이 되어야 했던 선미는 실질적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웹캠 얼짱 선발대회를 통해 모델 활동

당시에 대해 선미는 "선생님들은 '교사'가 되는 걸 추천했지만 선생님이 되려면 10년 이상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에 연예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그게 가장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짱 대회를 거쳐 모델 활동을 해보면서 현실적인 길이 되리라 판단한 것.

SM 오디션 참가

이후 선미는 혼자 서울을 오가며 오디션에 도전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전한 SM 오디션에서는 외모짱으로 나갔다가 배우 공승연에 밀려 아쉽게 2등을 했는데, 당시 함께 오디션에 참가한 슈퍼주니어 신동은 "그때 나는 스무 살이라서 선미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곤 했었다"면서 "긴 생머리를 하고 지하철 끝으로 가서 기대고 서 있어서 어두운 아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오해했던 과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JYP 연습생 당시

중1 때 참가한 JYP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선미는 자신 대신 편찮으신 아빠를 간병하는 12살, 10살 어린 동생들을 떠올리며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가끔은 병세가 악화되어 지친 아버지가 선미에게 투정 섞인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힘들게 연습을 하는 중에도 늘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먼저 간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선미는 '또 아빠가 마음이 힘들어서 투정하시나 보다'라는 생각에 답장을 미루고 연습을 이어갔는데, 바로 다음날 실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상을 치르기 위해 경주로 내려가자 초등학생 남동생들이 상주를 맡고 있었고 아버지가 선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다음 생에도 내 딸로 태어나달라"라는 부탁의 말이 담겨있었는데요.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은 선미에게 여전히 후회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선미는 마음 추스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채 원더걸스로 데뷔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한 결과는 당연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첫 정규 타이틀 '텔미'가 음원차트에서 8주 1위를 차지하는 등 대히트하면서 2007년 최고의 신인가수가 되었습니다.

원더걸스 미국 진출 모습

이듬해 내놓은 'so hot'과 'no body'까지 연이어 성공하면서 국민 걸그룹의 대열에 올랐고, 2009년 10월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76위에 오르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덕분에 선미가 계획한 대로 일찍이 연예인으로 성공하면서 두 동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지요.

미국 투어 당시

다만 아버지를 병간호하면서 동생들을 보살피고, 생계를 고민하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데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두 동생의 부모 역할까지 맡은 당시 선미는 고작 중고등학생 소녀였습니다. 심지어 2009년 미국 진출을 위해 고등학교까지 중퇴하면서 선미에게서 또래가 누리는 일상을 모두 사라진 셈이었고, 결국 선미는 2010년 학업을 이유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동국대 입학 모습

사실 원더걸스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도 선미는 여전히 JYP에 남아 가수로서 트레이닝을 이어갔습니다. 생계를 위해 뛰어든 일이지만 남다른 애정과 목표가 생겼고, 앞서 데뷔와 성공만을 바라보며 조급했던 것과 달리 아티스트로서 진짜 스스로 원하는 음악의 방향을 찾기 위해 나선 것. 이에 선미는 검정고시 합격 후 동국대 연극학부에 입학해 학교생활을 하는 중에도 꾸준히 트레이닝했고 JYP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웹하드에 연습 영상을 꾸준히 게재했습니다.

그리고 선미의 연습 영상을 박진영 프로듀서가 2013년 7월 "솔로를 내도 되겠다"라며 발전한 모습을 인정하고 독려한 끝에 선미는 솔로 앨범을 냈습니다. 이후 선미는 솔로 가수로 좋은 성적을 내는 한편 원더걸스의 멤버로 재합류해서 2017년 해체할 때까지 함께 활동했습니다.

미국 투어 당시

이제는 명실상부 최고의 여자 솔로 가수의 대열에 오른 선미는 최근 한 예능 프로를 통해 과거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보다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았는데요. 10년 전 원더걸스를 탈퇴한 순간을 회상하면서 "그때는 몸이 아픈 거보다 사실 마음이 아픈 게 더 컸다"면서 "(이후에) 솔로 데뷔하고, 다시 원더걸스 활동하고, 회사 나오고, 나한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근데 그 생각들이 날 점점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엠넷 달리는사이

이어 "5년 전쯤에 진단을 받았다. 경계선 인격장애라고 하더라. 그 경계선 인격장애가 날 너무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라며 "그래도 다행인 게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니까 괜찮아졌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러면서 "너무 일찍 데뷔했다. 청소년기에 자아라는 게 만들어지는 건데 그때를 차 안에서 보냈다"라며 "내가 나 자신을 돌보고,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이런 걸 하나하나 알아줘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학생 때 모습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돌보고 자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야 할 시기에 편찮으신 아버지와 두 동생을 돌보는 데만 급급했던 선미,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서 건강하고 성숙하게 활동 이어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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