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찍고 떼돈 번 줄 알았더니 평생 살던 집에서 쫓겨난 신세

최근 영화계에 다큐멘터리 열풍이 불었습니다. 지난 8월부터 현재까지 극장가에 걸린 다큐영화만 해도 '호크니', '블루 노트 레코드', '바우하우스', '동물, 원' 등 10여 편을 넘었는데요. 특히 작년 일본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생 후르츠'가 관객 7만 명을 넘기면서 다큐 영화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보다 한발 앞서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아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한국의 다큐영화 '워낭소리'는 무려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독립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워낙 높았던 영화의 인기 때문에 출연자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요.


워낭소리(2009)

영화 '워낭소리'가 세운 최종 관객 수 292만 명의 기록은 상업 영화 천만 관객 돌파에 비견하는 성공으로 평가받는데요. 팔순 농부 부부와 마흔 살 소에 관한 이야기에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닙니다. 단 7개의 상영관에서 개봉을 시작한 영화는 첫 주만에 8천 명의 관객을 모았고 상영관은 매주 20~30개씩 늘어났는데요. 조용히 개봉해 입소문 만으로 떠들썩하게 대박을 터뜨리는 일명 '슬리퍼 히트'를 이룬 것이지요.

다만 순 제작비 1억 원과 마케팅 및 배급 비용 1억 원을 합쳐 총제작비 2억 원으로 만든 영화의 기적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노부부의 집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였는데요. 실제 생활 중인 집 안에 무단 침입해 인증샷을 찍는 것은 물론 소란스럽게 마을을 오가는 통에 부부는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누렁이는 42살 나이로 하늘나라로 갔는데요. 이후 2012년 겨울 폐암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가 1년 투병 후 별세하시면서 "죽으면 소 무덤 옆에 묻어달라"라고 전한 말씀에 따라 자식들은 밭이 굽어 보이는 자리에 할아버지와 누렁이의 묘를 나란히 마련했습니다. 올해 6월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가시면서 할아버지와 누렁이 옆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편 해당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충렬 감독 역시 영화의 흥행 이후 사기로 많은 돈을 잃은 데다 뇌종양 판정까지 받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주인공 할아버지와 이 감독 모두 인터뷰를 통해 '워낭소리'를 찍은 것을 매우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해 안타까움을 주었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2014)

2014년 연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노부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와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의 신혼 같은 부부생활을 담은 영화인데요. 사실 두 분의 이야기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나오기 전인 2011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이를 인상 깊게 본 진모영 감독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다큐 영화로도 찍게 된 것입니다.

황혼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말들이 언론을 장식하던 시기에 76년째 신혼같이 매일 아침 색을 맞춰서 같은 옷을 입고 어딜 가나 두 손을 꼭 잡고 장난치는 노부부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였고 관객들은 할아버지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만 무려 48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이 영화 역시 출연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문제로 떠올랐는데요. 영화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진모영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할머니의 안전을 우려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연자 인권에 대해 호소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인간극장이 방영되고 사람들이 찾아올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겼다고 합니다. 다만 영화가 나간 후 세간의 관심은 할머니에게 큰 부담이 되었는데요. 할아버지도 없이 혼자 사는 집에 낯선 이들이 어슬렁 거렸고 영화가 크게 흥행하자 봉사, 기부 단체 등에 기부하라는 전화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4년 할머니는 횡성군 청일면의 집을 떠나 서울에 사는 큰딸 집으로 옮겼는데요. 현재는 오랜 세월 정든 고향을 잊지 못하고 횡성읍에 있는 작은딸의 집으로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파트 생활에도 잘 적응한 할머니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옛날 집에는 창문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트여서 달이 뜨고 지고, 해가 뜨고 지고하는 게 잘 보여서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할아버지를 떠나보낸지 수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집으로(2002)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지만 비전문 배우가 영화에 출연했다가 수난을 당한 예도 있습니다.  지난 2002년 45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가족영화 '집으로'는 개봉 전만 해도 스타 배우 하나 없이 그 누구에게도 흥행 기대를 받지 못한 영화였는데요.

실제 시골에 살고 있던 김을분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을 캐스팅해 무공해 연기를 보여주었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골 할머니와 도시 손주의 에피소드가 큰 공감을 얻은 덕분에 무려 450만 명이라는 놀라운 흥행 신화를 이뤄냈습니다. 연기가 어색해 말을 못 하는 역할로 재설정된 김을분 할머니는 대종상 신인여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며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안타깝게도 김을분 할머니 역시 원래 사시던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자 촬영지인 충북 영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는데요. 주된 촬영 장소인 영화 속 할머니의 집은 실제 거주지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할머니는 큰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주거침입을 일삼는 관광객들과 할머니가 영화로 번 돈을 노린 사기꾼들이 몰리면서 결국 할머니는 살던 곳을 떠나야 했지요.

95세가 되신 할머니는 현재 서울로 거처를 옮겨서 지내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지난 2016년 할머니는 근황을 전한 인터뷰를 통해 영화 '집으로'에 출연한 것에 대해 "좋지도 않고 후회도 안되고 그래요."라며 담담한 소회를 밝히셨다고 하니 영화로 인해 받은 피해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신 듯합니다. 한편 영화 '집으로'는 지난 9월 재개봉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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