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까지 공갈젖꼭지 빨았다는 파파걸의 믿기지 않는 불혹의 근황

동시간대 시청률 1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주말 저녁 예능에는 79세의 노모가 51세 아들의 일상을 보며 걱정과 한탄을 늘어놓습니다. 쉰이 넘은 중년 남성도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불혹의 나이가 된 이 배우 역시 아버지에게는 아직 시집 안 간 걱정덩어리이기만 한데요. 아버지의 폭로 덕분에 급식이 시절 TMI가 공개된 배우의 파파걸 시절을 만나봅시다.

4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파파걸의 정체는 배우 장나라입니다. 연극배우 겸 성우인 아버지와 TBC 탤런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장나라는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특히 아버지 주호성은  1968년 기독 방송의 성우로 데뷔한 후 故 이주일이 출연한 영화에서 이주일 목소리는 대부분 그가 맡을 정도로 성우로서는 왕성하게 활동한 반면 배우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요.

성우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에도 주호성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직접 연극을 제작해서 무대에 섰습니다. 덕분에 장나라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제작한 연극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하며 배우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지요. 다만 중학생 때까지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학업에 집중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딸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주호성은 동료 배우 양택조에게 연락했습니다. 양택조의 아들이 방송국 카메라 감독을 준비하던 시기에 프로필 사진을 부탁했고 그때 찍은 사진 덕분에 학습지와 햄버거 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광고업계에서 얼굴을 막 알리기 시작할 무렵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별' 보아와 연습생 동기로 나란히 앨범을 준비했는데 당시에 대해 장나라는 "SM 연습생 중 여자는 둘뿐이었다"라며 "보아 옆에서 춤 연습을 하려니 내가 하는 건 율동으로 밖에 안 보였다"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댄스가수를 원하는 SM과 의견이 달라 데뷔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장나라는 이후 가수 출신의 사업가 이상우에게 발탁되어 원업엔터테인먼트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2001년 5월 내놓은 데뷔곡 '눈물을 얼굴을 묻는다'는 다소 성숙하고 섹시한 콘셉트의 곡이었는데, 21살 장나라의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탓인지 '대박' 흥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소속사를 옮겨가며 오랜 기간 준비한 가수 활동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바람에 위기를 맞은 그 순간 장나라는 인생작을 만났습니다. 바로 시트콤 '뉴논스톱'에 출연해 귀엽고 상큼한 자신만의 매력을 200% 보여준 것이지요. 당시 뉴논스톱은 4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중에서도 장나라는 어리바리하고 순진한 캐릭터로 양동근과 러브라인을 그리며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양동근 너 죽을래?"라는 장나라의 귀여운 말투는 전국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후 장나라는 가수 활동에서도 성숙미를 버리고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로 변신해서 후속곡 '고백'과 '4월이야기'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데뷔 첫해에 연기자와 가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장나라는 이어 첫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까지 대박을 내면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기획 당시 여주인공으로 김희선과 손예진 등이 예정되었으나 캐스팅이 불발되면서 장나라가 맡게 되었다는 드라마는 바로 '명랑소녀 성공기'인데요. 처음으로 도전한 정극에서 여주인공으로 낙점되는 파격 캐스팅이었으나 장나라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작품을 이끌었고 덕분에 해당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32%를 기록하며 대박을 냈습니다.

이후 장나라의 인기는 소위 '장나라 신드롬'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소주, 자동차, 화장품, 통신사, 치킨, 과자, 음료, 교복 등 광고계를 섭렵했고 연이어 드라마 '내 사랑 팥쥐'까지 흥행에 성공해 배우로서 입지가 확고해졌습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발매한 2집 앨범 역시 흥행에 성공하면서 'sweet dream'과 '아마도 사랑이겠죠'가 큰 사랑을 받았고 연말 시상식에서 장나라는 가요대상과 연기대상, 연예대상을 모두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2003년 백상예술대상의 신인상을 받은 장나라는 갑자기 활동이 뜸해졌습니다.

2003년부터 중국에 진출해서 활동하느라 국내 활동이 뜸해졌기 때문인데요. 국내에서 톱스타로 큰 사랑을 받던 중 과감하게 중국 진출을 계획한 이는 다름 아닌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입니다. 이에 대해 장나라는 "중국은 나도 속아서 갔다. 아빠한테 사기당했다"라며 "처음에는 중국 드라마를 한 편 하자고 했다. 2개월이면 된다고 했다. 촬영할 때는 제작진, 배우분들이 정말 잘해주셔서 정도 들었고 좋기는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근데 다시 아빠가 '저쪽에서 OST를 하자는데 두 곡만 부를까?'라고 해서 그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불렀다. 그랬더니 '두 곡 더 불러서 싱글을 낼까?', '6곡만 더 부르면 앨범 한 장이 나오는데 부를까?'라고 하셔서 정규 앨범까지 내게 됐다"라고 설명했는데요. 장나라의 설명대로 중국 진출은 아버지 주호성의 계획 하에 회사의 도움 없이 시작한 것입니다.

때문에 체류비 등 경비를 모두 자비로 대느라 이전까지 번 돈을 모두 투자해야 했고 드라마 '따이오만 공주'가 대박을 내기 이전까지는 중국 활동의 수익은 마이너스였습니다. 그럼에도 주호성을 중국 진출 초기 중국의 소도시를 다니며 직접 프로모션을 기획해 장나라를 알릴 기회를 만들었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장나라는 결국 중국에서도 한국에서의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서포트 덕분에 중국에서 '천후'의 호칭까지 얻은 장나라는 한때 파파걸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매니저로 제작자로 딸의 활동에 늘 함께하는 모습 때문에 생긴 오해인데요. 이에 대해 장나라는 "어렸을 때 아빠가 밉기도 했다"라며 아버지와 애증관계라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더불어 "한때 아버지가 내 연애에 집요하게 관여하기도 했다"라며 서운한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주호성 역시 2017년 아침방송에 출연해 "자기가 하는 일을 아버지가 너무 자세히 알고 있으니 얼마나 싫을까 싶긴 하다"라며 "(최근에는) 되도록 본인에게 맡기고 중요한 것들만 도와주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2011년 드라마 '동안 미녀' 이후 국내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장나라는 20대 초반에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에 집중하다가 30대가 되어 돌아왔음에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동안 미모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2017년 드라마 '고백부부'를 통해 20대 새내기 대학생과 38살 주부 역을 동시에 맡은 장나라는 최강동안 미모의 장점을 극대화해 자연스럽게 작품을 소화했고 오랜 중국 활동의 공백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 부족했던 인지도를 높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드라마 '황후의품격'과 'VIP'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장나라는 더 이상 중국 활동의 공백이 무색한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의 자리에 재진입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새로운 드라마 '오마이베이비'의 방영을 앞두고 오랜만에 그의 아버지 주호성이 나섰습니다.

주호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마이베이비'의 공식 포스터를 게재하면서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손에 육아용 공갈젖꼭지. 사실 쟤는 중3 때까지 저걸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열받는 일 생기면 쭉쭉 빨곤 했었다. 그래서 저걸 손가락에 낀 모습이 내게 낯설지가 않다"라며 "이번 역할이 베이비를 간절히 원하는 여성인가 본데 사실은 나도 간절한 중이라는 건 아실라나..쩝..#손주기다리는애비"라는 글로 40대에 접어든 딸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고백했지요.

한때 여배우인 딸의 연애를 간섭하던 아버지에서 이제는 40대가 된 딸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아버지로 변한 주호성의 모습은 '스타의 아버지'라는 점만 제외하면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여느 부모와 다름없어 보입니다. 한때는 무성한 소문을 몰고 다닌 별명이기도 하지만 '파파 걸 장나라'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최고의 멘토이자 스승이 아버지 주호성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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