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지하에서 기저귀 빨던 취준생의 현재 모습

20대 청년들에게 아르바이트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요즘, 어린 시절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거나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연예계에 입문한 스타들을 보면 '부모님의 뒷받침 없이는 배우의 꿈을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 집안 형편 때문에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20대를 혹독한 아르바이트와 함께 보냈다는 이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는 91년생 청년의 30살 된 근황을 만나봅시다.


레슨비가 없어서 연극영화과 입시를 포기했다는 주인공은 배우 원진아입니다. 원진아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가졌지만 가장 형편상 제대로 된 레슨을 받지 못했고 준비 없이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습니다. 대신 집과 가까운 대학의 문화기획학과에 들어갔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지요.

이후 원진아는 연기에 대한 열정은 잠시 접어둔 채 집안의 생계를 위해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원진아의 부모님은 금전적 부채가 있는 상황이었고 직접적으로 부탁하시진 않았지만 원진아는 장녀라는 책임감으로 부채를 갚아나갔습니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콜센터, 백화점, 워터파크 등 업종을 가리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산후조리원 지하실에 있는 세탁실에서 아기 기저귀와 수건을 빠는 일입니다. 해도 해도 금방 세탁물이 쌓이는 데다 축축하고 뜨거운 세탁물을 맨손으로 만지다 보니 손이 다 텄고 지하실에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무섭고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치열했던 아르바이트의 경험은 데뷔 후 연기에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요.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목욕탕 청소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유독 현실적인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은 것입니다. 드라마 '라이프'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조승우도 해당 장면을 보고 "진짜 그 사람처럼 하고 있더라"라며 칭찬할 정도이지요.

이제는 "연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라며 웃으며 회상하지만 20대에 갓 들어선 사회초년생이 자신의 꿈에는 다가서지도 못한 채 빚 갚는데만 집중하기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다행히 원진아는 보험회사에 입사해 회사 생활까지 하면서 번 돈으로 집안의 부채를 어느 정도 정리했고, 늘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던 어머니는 "이제 엄마 안 도와줘도 되니까 지금이라도 너 하고 싶은 거 해"라며 연기활동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연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인 천안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서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는데요. 서울로 올라와 처음 2년가량은 여전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프로알바러 원진아는 밤낮 가리지 않고 하루에 알바 두 개씩을 뛰면서도 연기의 꿈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 영화아카데비(KAFA)에서 진행하는 오디션 공고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고, 해당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만난 작품이 바로 단편영화 '캐치볼'입니다. 원진아는 데뷔작인 '캐치볼'을 촬영하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데다 성실한 태도로 작품에 임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다른 작품에 프로필까지 보내주며 원진아를 소개하고 다닐 정도였지요.

실제로 원진아는 '캐치볼' 유은정 감독의 소개로 단편영화 주연과 장편영화 단역 등 다양한 영화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첫 장편 상업영화 조연작인 '강철비'를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원진아는 27살이었지만 얼떨결에 남한으로 오게 된 북한 소녀 역을 맡아 순박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충무로 새내기 원진아는 스크린 데뷔작부터 주연을 꿰찼습니다. 원진아는 12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여주인공이 되었는데요. 데뷔작부터 주연을 맡아 우려를 안고 시작했지만 멜로를 중심으로 한 해당 작품에서 원진아는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받았고 덕분에 2018 아시아 태평양 스타 어워즈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서 차기작인 드라마 '라이프'에서는 조승우, 유재명, 이동욱 등 연기력 갑으로 불리는 대선배들과 함께 극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원진아는 인터뷰를 통해 "혼자 하는 신을 찍을 때는 마음이 편한데 선배님들과 함게 찍을 때는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맴돈다"라며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부담감을 이겨낸 원진아의 연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평소 콤플렉스라고 밝혀온 특유의 저음 목소리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드라마의 분위기를 더욱 살렸습니다. 원진아 스스로는 자신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선배 나문희도 원진아의 목소리에 대해 "이 몸에선 나올 수 없는 로우톤의 발성이 나온다"라고 칭찬할 만큼 배우로서의 강점이 된 것이지요.

지난해 원진아는 상반기 영화 '롱리브더킹'과 '돈'에 이어 하반기 드라마 '날 녹여주오'까지 출연했습니다. 오랜 시간 접어두어야 했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듯 열일 행보 중.

최근에는 장르물의 대가 연상호 감독의 픽을 받은 것으로 전해져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제작에 앞서 유아인, 박정민, 김현주 등과 함께 캐스팅된 것인데요. 지옥행 선고를 받으며 겪게 되는 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이 작품에서 원진아의 매력적인 저음 보이스가 다시 한번 빛날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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