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난 정상인이 좋아" 인종차별 때문에 여자친구도 못 사귀었다는 한국 혼혈아

인종차별에 대한 세계시민들의 의식이 꽤 높아졌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을까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지면서 인종차별과 관련한 세계인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30대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해피 코로나", "코로나 파티" 등을 외치는 독일 청년들과 실랑이가 벌어져 아내가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고, 아일랜드의 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수업 중 한국인 학생 옆을 지나며 "코로나가 오고 있다"라는 발언을 한 후 "농담이었다"라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지요.

사실 유럽 내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 내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이 드물었고,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 또한 더욱 심각했습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한국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차별을 겪었다는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인 아버지와 스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스페인에서 자라면서도 늘 인종차별 때문에 괴로웠다는 주인공은 모델 장민입니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소도시 엘체에서 나고 자란 장민은 주변에서 아시아인을 보기 드문 환경이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유독 인종차별에 시달렸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듣는 게 일상이었지요.

심지어 학교에서 호감 가는 여자애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다가 "아니, 난 정상인이 좋아"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듣기도 했는데, "정상인이라니, 무슨 소리야?"라고 되묻자 그 여자애는 "중국은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종차별로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한국인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 싫었다는 장민은 "아버지가 한국식으로 교육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친구는 세 과목이 낙제해도 게임기를 받았지만, 나는 시험을 잘 봐도 게임기를 빼앗기곤 했다"라며 엄격한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가졌었다고 말했지요.

장민의 아버지는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1980년대 스페인에 태권도 도장을 열며 아내인 장민의 어머니를 만나 타국에 정착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육과 예절에 대해 다소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로 자녀를 대했지요. 그러면서도 인종차별을 겪어 상처를 받은 아들에게 "민아. 넌 특별해. 문화가 두 개 있는 거야"라며 위로를 건네고 학교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다정한 아빠이기도 했는데요.

다만 장민은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아버지까지 놀릴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아버지가 학교 앞에 오는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그렇게 혼혈인으로서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인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장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이 있습니다.

수술을 앞둔 아버지 곁을 지키는 대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19살 당시를 후회하는 것인데요. 당시 장민의 아버지는 "아빠가 지금 힘들어서 민이랑 같이 보내고 싶었어, 우리 같이 가족끼리 파이팅 하자"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후 장민은 늘 마음속에 짐처럼 당시를 후회하며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장민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해 나갔습니다. 당시 105kg에 육박하던 체중을 감량하고 헬스 트레이너로 일할 정도로 몸을 만든 장민은 다이어트 기념으로 촬영한 프로필 사진으로 우연히 태국 광고 회사에 모델 제의를 받게 되었고 모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부터 태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지요.

모델로서 꽤 안정적인 입지를 쌓아가던 2015년 장민은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또 한 번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습니다. 살아생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는 의지로 도전을 감행한 것이지요. 당시 가족과 친구들은 낯선 나라에 가겠다는 그를 말렸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간직해온 그에게는 한국행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단호한 결심으로 왔지만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 밖에 못하는 그가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보다 더한 열정으로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고 한국 패션업계에서 원하는 스키니 한 몸을 만들기 위해 1일 1식을 하면서 독하게 운동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온 지 2년여 만에 장민은 차츰 업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패션 브랜드의 전속모델로 활동하면서 예능 프로를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은 알린 그는 '스페인 다니엘 헤니'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더불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많은 공감과 응원을 받고 있기도 한데요. 이탈리아-한국 혼혈인 모델 억만 푸오코와 함께 각국의 문화차이를 담아낸 콘텐츠를 만들면서 장민은 구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한편 스스로도 한국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델이자 유튜버로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8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장민은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는데요. 그에 대한 답은 최근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바로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장민을 한국에 완전히 정착시킨 그의 아내는 헬스 트레이너 출신의 인플루언서 강수연입니다. 두 사람은 강수연의 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처음 만났는데 당시 강수연을 보고 첫눈에 반한 장민이 SNS를 통해 연락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처음 강수연은 훈훈한 외모의 모델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아무한테나 저러는구나"싶어 거절했지만 이후 꾸준히 마음을 진심을 전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모습에 반해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2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음에도 혼인신고부터 먼저 한 사실이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장민은 "수연이가 도망갈까 봐 빨리 잡고 싶었다"라고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앞서 장민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강수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무작정 찾아가 큰절을 하면서 인사를 드리기도 해 이미 처가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다큐 프로에 출연한 장민은 처가 식구들을 위해 직접 스페인 요리를 대접하고 함게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생전에 가족을 소중하게 여겨서 주말에는 늘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는 아버지를 꼭 닮은 모습이지요. 아버지의 조국에 와서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새로운 가족까지 꾸려내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지난날 아버지께 서운하게 대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모두 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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