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가 반지하 살던 신혼시절 시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은 이유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인생의 위기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시간을 극복할 힘은 충분합니다. 그때 나를 믿고 내 손을 잡아준 이가 사랑하는 배우자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SBS 좋은친구들

오랜 무명시절 때문에 부모님마저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권유한 그때, 아내가 나서서 "제 남편을 믿어주세요"라고 말해주었다는 복받은 남편은 장항준 감독입니다.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인 장항준 감독은 졸업 후 SBS 막내작가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채택된 예능 아이템이 '좋은친구들'이라는 이름을 달고 흥행 대박을 쳤습니다. 이때 장 감독의 직속 후배로 들어온 보조작가가 바로 지금의 아내 김은희 작가이지요.

예능작가 시절 김은희 작가

회사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장 감독 때문에 인사발령을 받고 한참 후에야 사수와 첫 대면을 하게 된 김은희 작가는 '뭐 이런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면 장 감독은 커트머리를 한 김 작가를 보자마자 '예쁘다'라고 생각했는데요.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라는 장 감독은 함께 일을 하면서 김은희 작가에 대한 마음이 커졌고 김 작가 역시 선배로서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이성적인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 감독이 먼저 고백해서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당시 장 감독은 "빨리 가장을 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던 반면 김 작가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오빠랑 하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장 감독이 프러포즈까지 한 것.

하지만 대차게 프러포즈를 할 당시 장 감독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서 1996년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의 각본으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 후보에까지 오르면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영화감독으로서 입봉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8년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그조차 장 감독의 부모님이 마련해 준 것이었는데, 결혼 후 장 감독의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를 불러놓고 3년 넘게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백수처럼 지내는 아들에게 "아버지랑 같이 철공소를 하자"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장 감독이 차마 "조금 더 기다려달라"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때, 옆에 있던 김은희 작가가 "남편은 영화감독이 꼭 될 거예요. 딱 1년만 시간을 주세요"라며 무릎을 꿇은채 간곡히 부탁했지요.

신혼시절 작성한 맞고 장부

실제로 당시 두 사람은 쌀이 떨어질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장 감독은 "은희야 쌀이 떨어졌네"했고 김 작가는 "아, 그렇구나. 그럼 친구들한테 쌀 들고 오라고 하자"그러고 웃었습니다. 최근에는 한 예능에 출연해 신혼 때 맞고를 치면서 적은 장부도 공개했는데요. 장 감독이 아내 몰래 화투장에 표식을 긁어 넣었다가 본인조차 표식에 익숙지 않아서 햇볕에 비추어보는 바람에 위조 정황이 들켰다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신혼부부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네요.

아내의 믿음 덕분에 원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장 감독은 그로부터 2년여 후에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입봉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김은희 작가는 그때까지도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요. 장 감독의 타자 실력이 워낙 느린 편이어서 영화사에 전달해야 하는 시나리오의 타자를 치면서 "대본 쓰는 일이 참 재미있겠다"라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장 감독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일을 소개해 주는 등 아내의 새로운 꿈을 위해 외조를 시작했습니다. 문예창작관련 전공이 아닌 김은희 작가에게 장 감독은 대본 집필법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었지요. 이에 대해 김은희 작가는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집필할 당시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죽을 뻔했다"면서도 덕분에 차기작 '싸인'에서 그나마 대본 다운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드라마 '시그널' 이후 김은희 작가는 남편의 수입을 추월했습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지난해 진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동네 어떤 사람이 유명해져도 기분이 좋은데, 그 유명한 사람이 나랑 같이 사니 얼마나 좋아요? 자랑스럽죠"라며 으쓱했습니다.

"은희에게 가사노동의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장 감독은 바쁜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가계부도 씁니다. '결혼 생각은 없지만 결혼한다면 오빠랑 하고 싶다'라던 김은희 작가의 선택, 신의 한 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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